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자이 돌격 (문단 편집) === 순수한 [[백병전]] 능력 비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age.fmkorea.com/5c841a011043a3951f7dbc5f08796606.jpg|width=100%]]}}} || || 미 해병대원들이 해맑은 얼굴로 반자이 어택을 따라하며 노는 장면.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 돌격이 아니라 할 일이 없어 한가한 군인들이 재미삼아서 일본군들을 따라하며 놀리는 장면이다. 일단 들고 있는 칼부터가 일본군의 [[일본도|군도]]가 아니라 미군의 정글도 [[마체테]]. 미군에서 반자이 돌격을 진지한 연구/분석의 대상은 커녕, 얼마나 [[웃음벨|웃음과 조리돌림거리로밖에 여기지 않았는지]] 잘 알 수 있는 역사적 기록물이다. || >'''[[일본군|저 개새끼들]]에게 진짜 반자이 돌격이 뭔지 한 번 보여주자! 이지 중대, 돌격!''' >- [[아버지의 깃발|마이크 스트랭크]], [[이오지마 전투]] D+2[* 다만 이오지마 전투의 일본군들은 지휘관인 [[쿠리바야시 타다미치]] 장군의 전략대로 반자이 돌격을 하지 않고, 섬 전체에 지하 시설을 건설하여 섬을 통째로 요새화시킨 상태였다. 전투 자체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군도 상당한 사상자를 냈다. 이런 피해를 고려한 미군은 [[원자폭탄]]을 쓰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통해 현대전에서 돌격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며, 돌격 방어자 역할인 일본이 미군에 충분한 피해를 입혔음을 알 수 있다. 미군의 공세보다 허접한 반자이 돌격이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 추론 가능하다.] 설령 양측 다 탄약, 수류탄 없이 총검으로만 근접전을 벌여도 '''체력/체격에서 밀려서''' 그것대로 문제였다. [[복싱]] 등 격투 스포츠에서 괜히 체급을 나눠 경기를 치르는 게 아니다. 물론 맨손 격투가 아닌 날붙이를 들고 싸우는 상황에선 체급의 의미가 떨어지며 실제로 이 때문에 검도에서 체급을 나누진 않는다. 허나 군용 무술은 스포츠가 아니다. 총검들고 싸우다가도 언제든 엉겨붙어 맨손으로 싸울 확률 또한 상당하고, 다수대 다수로 싸우니 체력, 근력, 체격에서 나오는 차이가 컸다. 다른 기술들도 중요하나 힘싸움에서도 밀리면 안된다. 상대를 밀쳤을 때 휘청이거나 넘어지기만 해도 그대로 군홧발에 밟히거나 다른 병사의 총검에 찔릴 수 있다. 일본군은 미군과 영연방군에 비해 영양 상태도 부실했고, 체격도 미군이나 영연방군보다 훨씬 작았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평균 신장은 160cm 전후였고 미군과 영연방군은 173cm였다. 숙련도, 전투 의지도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뼈와 살이 적나라하게 맞부딪히는 백병전에서는 필패할 수 밖에 없었다. 각각 빤쓰/훈도시만 입고 주먹질로만 싸운다 치면 오히려 영양상태, 체격, 복싱/레슬링 등 스포츠 보급, 사기, 전술적 유연성 등 모든 것이 더 뛰어난 미군이 일방적으로 이길 법했다(...). 순수하게 총검술만을 겨루는 백병전을 한다고 해도 힘 뿐만 아니라 기술 면에서도 미군과 영연방군이 우위였다. 당시 일본군은 긴 총검에 의지한 전방 찌르기에만 올인하는 '''[[근대 총검술]]'''만을 익힌 상태였다. 그러나 '''근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 총검술은 빽빽하고 철저한 대오를 지키던 [[전열보병]] 시절에, 달려오는 적 보병이나 기병대에 맞서서 머스킷 총병들이 착검을 하고 [[창병]]처럼 격파하던 시절에 맞추어 개발된 총검술이다. 화기의 발달로 병력 밀집도가 훨씬 낮아져 매우 불규칙하고 다양한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의 [[각개전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현대 전장에서 근대 총검술은 이미 도태된 지 오래였다. 미군은 1차대전 파병 이후부터 일단 참호전에 적절한 각개전투식 총검술, 군 격투술을 도입하려고 노력했으며, [[대공황|혼란스러운 시대상]] 때문에 소싯적에 주먹질 좀 해 본 미국인들도 많이 입대했다. 군필자라면 [[육군훈련소]] 등 기초 군사교육 때 배운, 무난하게 만들어진 현대 총검술인 [[총검술#s-4.1|연무형]]이 기억날 것이다. 요즘은 복무 기간 단축 등의 영향으로 총검술을 안 가르치는 추세라서 군필도 총검술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상식적으로 상대가 찌르기만 한다면 뽀족한 총검 끝을 어떻게든 제끼거나 피해야 한다는 건 이해될 것이다. 연무형과 같은 현대 총검술의 다양한 공격법과 방어법은 이러한 이유에서 도입된 것인데, 그럼에도 시대에 뒤떨어진 '''전방 찌르기 일변도'''의 근대 총검술을 고집하는 건 오로지 일본군 뿐이었다. 반면 미군은 현대식 총검술 뿐 아니라 간단한 킥복싱과 유술도 훈련해 다양한 근접전 대응 훈련을 받았으니 훨씬 효율적으로, 일본군의 찌르기를 받아 넘기며(연무형에서의 좌제쳐, 우제쳐 등에 해당.) 다양한 방법으로 때려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구 총검술 연무형만 봐도 전방 찌르기 카운터 기술이 7가지나 된다. '비켜 우로 찔러', '우로 돌아 좌제치고 찔러', '비켜 우로 좌베고 때려', '좌제치고 우베고 찔러', '비켜좌로 좌제치고 돌려쳐', '우제치고 좌베고 길게 찔러', '비켜좌로 찔러'. 일본인들이 전국시대에도 이 지경이진 않았다. 도리어 백병전을 위한 유술이 발전하고 창칼을 비켜내고 밀어내며 반격하는 기술이 많았는데 혼란스러운 세계대전 말기인만큼 다 까먹고 정신력만 강조했다. 어차피 며칠 훈련받고 소모품처럼 투입되는 징집병한테 제대로 된 무술을 가르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간혹, 양산된 싸구려 [[군도(도검)|군도]]가 아니라 사무라이 명문가 출신의 장군이나 장교가 [[전국시대(일본)|일본 전국시대]]부터 쓰던, 말 그대로 진짜 [[전가의 보도]]를 들고 와서 싸우다 전사하고, 그걸 노획한 미군 병사가 나중에 횡재했다는 것을 알고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비싼 값에 팔아 치운 사례도 있다. 게다가, 미군들이 진지구축한다든지 무기가 별로 없는 틈을 타서 반자이 돌격을 했더니만 몸집으로 더 우월한 미군들이 휘두르는 삽자루에 일본도를 가진 일본군이 맞아죽거나 도륙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삽자루로 칼을 막고 군홧발로 [[사타구니]]를 발로 차서 그야말로 [[고자]]가 되는 아픔에 몸부림치는 일본군이 떨어뜨린 일본도로 역습하여 베어죽이고 칼을 전리품으로 챙겨가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pds21.egloos.com/c0063102_51e2e7e901975.jpg|width=100%]]}}} || || 미국 뉴올리언즈 국립 2차 대전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http://egloos.zum.com/zairai/v/5756222|출처]] || 1942년 과달카날 전투에서 해병대 대위 월터 스토퍼 매킬러니(Walter Stauffer McIlhenny)(1910~1985)가 일본군 장교가 휘두른 칼에 [[철모]]를 맞았으나 적을 사살하고 노획한 전리품이다. 이 사람은 [[미합중국 해병대]] [[준장]]으로 예편하였고, 그 유명한 [[타바스코 소스]] 제조회사인 매킬러니사 오너 가문의 아들로서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과달카날 전투 당시 보급이 너무나도 모자랐고 밥도 맛이 없었던 경험이 남아서 베트남 전쟁 이후 타바스코 소스를 정식 군납품으로 납품하였다. 사진의 군도는 [[98식 전도]]에 약식칼집으로 패용고리와 가죽덮개는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육군 토야마 학교에서 내놓은 군도 조법 교범에서도 '철모는 때리지 말라'고 실려 있다. 일본군의 기초 군사 교육이 얼마나 막장으로 진행되었는지를, 그리고 설령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해도 실전에서 이를 적용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